하얀 눈으로 뒤덮인 마을의 거대한 저택. 얼굴이 온통 흉터로 뒤덮인 마리가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하는 귀공자 루벤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다. 촉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남자와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의 아이러니한 만남은 곧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으로 발전하고, 안데르센의 환상동화 <눈의 여왕>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그들의 슬픈 사랑과 함께 변주된다.
그러나 새로운 의술이 발견되고 루벤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기로 하자,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한 마리는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의 고통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회에서 ‘장애’라 이름하는 육체적인 조건들로 인해 자아를 초월하는 깊은 사랑을 발견해 낸 그들만의 공간이 근대 과학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벤은 시각이 우위를 선점하는 이성의 세계가 그들의 환상적인 공간을 파괴하도록 방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