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Sorum, 2001)

이빠진 계단들과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낡고도 더러운 유리창, 낮이고 밤이고 으시시한 적막과 어둠만이 감도는 긴 복도, 계단과 벽에 그려진 기괴한 낙서들, 환한 대낮에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살아 꿈틀대는 것 같은 아파트… 용현(김명민 분)은 간촐한 짐에 햄스터 한 마리를 가지고 얼마 전 화재로 죽은 소설과 광태가 살던 미금아파트 504호로 입주한다.

천정과 바닥의 불에 그을린 기묘한 흔적, 처음 보는 공간인데도 이상하게 낯익은 장소. 복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음산한 소리…용현은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을 예감하는데…택시기사로 일하는 용현은 새벽근무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오던 중 근처 편의점에 들르고, 그 곳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선영(장진영 분)과 마주친다.

퇴근길, 편의점 앞을 지날 때마다 습관처럼 백미러를 보게 되는 용현은, 우두커니 앉아 밖을 내다보는 선영을 여러 번 목격한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깊은 상처를 지닌 듯 보이는 그녀의 모습. 비오는 날, 트럭이 튀긴 흙탕물을 뒤집어 쓴 선영을 차에 태우고 동승하게 된 용현, 그들 사이에 오가는 묘한 친근감, 부정하고 싶은 사랑의 감정이 서서히 시작되는데…

한편, 광태의 사고 현장에서 그의 습작노트를 챙겨 놓은 이작가는, 현재 그 노트를 토대로 30년 전 미금아파트에서 실제로 발생한 치정사건을 미스터리 소설로 쓰고 있다. 사건의 내용은 30년 전, 옆집 여자와 눈이 맞은 사내가 부인을 죽이고, 갓난아들을 버려두고 정부와 함게 도망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파트의 화재사건…

이작가는 특히, 시체의 행방과 끔직한 화상을 입고 고아원에 맡겨진 갓난 아기에 주목한다. 만약, 시체가 벽 속에 유기되었다면 그 원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시점에 30년 전 화재사건과 얼마 전 광태 화재사건, 이 두 번의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504호에 용현이 입주해 온 것이다.

이작가는 멋대로 용현을 버려진 갓난아기의 모델로 설정하고, 소설의 엔딩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용현은 이작가로부터 이 사실을 듣게 되고, 이 때부터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은 점점 용현을 옥죄어 오는데…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줄을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줄은 없어지고 기차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을 도와준다. 뤼미에르형제의 세계최초의 영화이자 상영시간 1분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