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얼굴(A Face In The Crowd, 1957)

론섬으로 불리는 래리 로데스(앤디 그리피스)는 부랑자다. 그러다가 마르샤 제프리스(패트리샤 닐)에게 발견되어 그는 매우 유명한 TV 스타가 된다. 그의 성공은 점점 힘을 갖게 되고, 이 힘은 타락으로 이어지는데..

<군중속의 얼굴>은 <에덴의 동쪽>,<워터프론트>,<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의 1957년 작품으로 버드 슐버그 (Budd Schulberg) 의 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매카시 선풍이라는 다이나마이트의 심지처럼 미묘했던 시기에 <군중 속의 얼굴>은 매스미디어가 일반시민에게 미치는 충격을 실험하기 위한 최초의 영리한 시도였다.

주인공 <앤디 그리피스>는 그의 영화 대뷔작인 이 영화에서 론섬 로즈 역할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하면서 후에 라는 라디오, 텔레비젼 스타로 나아가는데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위시하여 폴 뉴먼,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등으로 대변되는 <메소드 연기(배우를 작중인물의 내면적 특성과 일치하게 만들어 감수성을 이끌어내는 연기법)>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명작이다.

< 감독소개 >
엘리아 카잔 (Elia Kazan) 1909. 9. 7 ~ 2003. 9. 28
1909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터키 사람은 아니었고, 그의 양친은 나라를 옮겨다니며 사업을 하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카잔이 2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베를린으로 옮겼으나 부친의 사업이 여의치 않자 그의 아버지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먼저 미국으로 떠났고, 나중엔 가족까지 모두 불러들였다.

뉴욕에 정착한 카잔은 예일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한 뒤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차츰 능력을 인정받은 카잔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모두가 나의 아들들> 같은 무대극을 연출한다. 꾸준히 단편영화와 연극을 오가면서 활동을 하던 엘리아 카잔은 1945년에 만든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 A Tree Grows in Brooklyn>으로 데뷔한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늘 사회적인 이슈들에 관심을 두었다. <부메랑 boo-merang>(1947)과 <거리의 혼란 Panic in the Streets>(1950)은 깔끔한 범죄드라마로서 오해와 저항, 이해의 부족을 무릅쓰고 개인과 대중을 위해 일하는 정부관리들의 용기있는 행위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1947년에 그가 내놓은 세 번째 작품 <신사협정 Gentleman’s Agreement>은 그 해 아카데미에서 작품, 감독,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다. <신사협정>은 일관되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카잔의 ‘냉정한 리얼리즘’이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하여 최초로 꽃피운 작품이다.

이후 카잔은 무대 시절 연출했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1951)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말론 브랜도라는 신인 연기자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비비안 리의 연기는 기대에 못 미쳤으며, 연극무대를 지극히 양식적으로 영화로 옮겼다는 평가를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1952년 카잔은 미국의 마녀사냥, 매카시 선풍이 불어닥치고 있는 가운데, 의회 반민주활동위원회에 소환되어 자신이 1934년부터 1936년까지 공산당원이었음을 고백하고 자신이 알고 있었던 당원들의 이름을 댔다.

일종의 변절을 한 셈인 그는 자신의 공산주의 경력이 과오였음을 인정하고 공산주의와 공산주의들을 색출하는 데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이때부터 카잔의 영화 경력에서 자신의 정치적 태도의 변화를 공개적으로 정당화하는 미묘한 변화들을 볼 수 있다.

52년에 만든 <혁명아 자파타 Viva Zapata!>는 자파타의 일대기를 통해, 독재 정권과 같은 전체주의적 방법에 의해서는 결코 혁명이 달성될 수 없음을 강조한 작품이었고, <팽팽한 줄에 매달린 사나이 Man on a Tightrope>(1953) 역시 냉전기간에 소련에서 탈출하는 체코의 서커스단을 묘사한 반공영화였다. 이러한 점은 그의 가장 뛰어난 영화 <워터프론트>(1954)에 이르러서도 미묘하게 반영된다. 이 영화는 부두 노동자와 자본 계급간의 대립을 빌려 정부에 대한 범죄 행위를 제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정치적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6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연극에서 시작한 그의 경력은 배우들을 다루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와 리 스트라스버그는 1947년 이제는 고전적인 연기방법의 하나인 메소드 연기법의 효시가 되는 연기학교 ‘액터즈 스튜디오’의 문을 연다.

이후 1950년대 카잔의 영화들은 액터즈 스튜디오의 제자들과 함께 한 것이었다. 말론 브랜도를 위시하여 제임스 딘(<에덴의 동쪽> 1955), 캐롤 베이커(<베이비 돌> 1956), 앤디 그리피스(<군중속의 얼굴> 1957),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초원의 빛> 1961) 등은 그의 지휘 아래 21개의 오스카 후보와 9개의 오스카 주연상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1998년, 89세의 엘리아 카잔은 평생을 영화에 받친 노감독에 대한 존경과 영화 외적인 정치 활동으로 동료를 배신한 사람이라는 논란 속에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운 메소드 연기법의 전통과 사회파로서의 엘리아 카잔은 미국영화의 특질을 가장 잘 표현해 내면서 화면 속의 삶을 바로 극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 헐리우드 영화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메소드 연기 (Method Acting) >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배우 훈련시스템을 개량, 발전시킨 연기지도 방법으로 배우의 내면적 연기 스타일을 가르키는 말. 극중 배역에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이입하여 영화의 진실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배우는 연기하는 매순간마다 극중 인물로서의 생(生)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워터 프론트>에서 말론 브란도가 보여준 연기가 메소드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다. 30년대 스타니슬라브스키가 개발한 이 방법은 40년대 중반 미국극단에서 연기를 지도하던 스텔라 아들러와 리 스트라스버그, 해롤드 클러먼이 주도했던 그룹 시어터(Group Theatre)에서 이 방법을 채택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극단의 회원중 한 명이었던 엘리아 카잔은 1947년 동료들과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등을 배출하면서 50년대 미국의 영화, 연극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카잔은 그의 스승이었던 리 스트라스버그의 요청에 따라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강의를 하게되는데 그는 유명한 연기 교사로 명성을 얻으면서 스타니슬라브스키가 개발한 배우훈련 시스템에 리 스트라스버그의 이론이 추가된 메소드 연기를 완성한다. 그는 강단에서 ‘연극적 체험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림은 눈 위에 쓴 글씨와 같다. 눈이 녹으면 글씨도 소멸된다. 나의 연기술은 여러 세기에 걸쳐 모든 나라의 위대한 배우들이 쌓은 체험의 총체인 것이다. 이 가운데서 최고의 것은 스타니 슬라브스키에게서 온 것이고 나머지는 나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밝혔다.

강단에서 배우를 양성하던 카잔은 1954년 자신이 만든 영화 <워터 프론트 On the Waterfront>에서 주인공 말론 브란도를 통해 메소드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다. 깡패조직에 혈혈단신으로 대항에 노동자의 권익을 찾는 테리역의 말론 브란도는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불안과 희망 등 내면의 정서를 보여주는 연기를 통해 탁월한 메소드 연기를 해낸다.

카잔 감독의 <워터 프론트>에서 실용화시킨 메소드 연기는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들도 배우에게 영화촬영 도중 즉흥연기를 요청하는 등 메소드 연기는 누벨바그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렇게 엘리아 카잔 감독이 도입한 메소드 연기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위시하여 폴 뉴먼,캐서린 헵번,폴 뉴먼,로버트 레드포드,페이 더너웨이,더스틴 호프만,로버트 드 니로,알 파치노 등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스타니슬라브스키에서 시작되어 리 스트라스버그에 의해 완성, 엘리아 카잔에 의해 널리 알려진 메소드 연기는 배우의 기교와 영감에 의해 좌우되는 연기라는 전통적인 시각을 깨뜨리며 배우를 작중인물의 내면적 특성과 일치하게 만들어 감수성을 이끌어내어 영화, 연극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줄을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줄은 없어지고 기차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을 도와준다. 뤼미에르형제의 세계최초의 영화이자 상영시간 1분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