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Admiral’s Diary, 1997)

1592년 4월 13일 새벽. 부산포 앞바다에는 일본의 왜선단 700석이 기민하게 숨어들고 있었다. 이를 보고 받은 부산성 장수 정발은 한양의 조정으로 급히 장계를 띄운다. 정발의 파발마가 한양에 도착하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바로 그 시간, 다대포를 지키고 있던 박홍은 부산포 앞바다의 왜선 700척을 보곤 겁에 질려 경상 우수사 원균에게 급히 구원을 요청한다. 군사를 통솔할 능력은 없고 그저 혈기만 왕성하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원균은 수군을 이끌고 왜병 선단의 맞지만, 능수 능란한 왜병에게 연전연패하다가 결국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5월 3일 한양 점령, 5월 27일, 임진강과 개성 그리고 평양 함몰.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5월 6일, 당포에서 비참한 꼴로 다가오는 원균의 병선과 상봉한다. 이윽고 5월 7일, 옥포 해전!! 옥포는 후미진 만이다. 왜군들이 육지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있을 그때, 이순신은 배를 하나씩 침몰시킨다.

옥포 해전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순신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조수가 밀물로 변할 즈음, 저만치서 나대용의 배가 나타난다. 순신의 표정이 밝아짐과 함께 섬찍한 괴성을 지르며 거북선 2척이 나타난다.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짐과 함께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철갑과 화포로 중무장한 철갑선인 거북선이 나타난 것이다. 앞장선 거북선은 적선으로 돌진하여 천, 지, 현, 황, 각양 총통 등을 발포한다. 순신은 사천 해전에서 왜 수군의 12척 모두를 불사른다. 연전연승! 그리고 학익진법!

한편 왜군들은 6월 평양을 점령, 함경도군의 대함대와 막대한 군량미가 지켜진 것이다. 야밤을 틈타 왜수군 연합 선단이 일시에 조선 수군을 공격할 신호였던 것이다. 순신은 왜병선을 이른 아침 관음포로 몰아 넣는데 성공한다. 관음포는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다. 뒤처져 있던 진인은 순신이 승리의 전기를 마련하자, 전공을 챙기기 위해 바삐 퇴각 일로의 왜병을 섬멸하겠다며 관음포로 들어간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왜병선에 진인 선단은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게 되고, 이를 발견한 순신은 진인을 구하려고 관음포로 들어간다. 왜장에게 화살을 겨누는 순신. 그러나 위기에 소년병을 구하려던 순신은 화살의 방향을 소년병을 치려는 왜놈에게 쏘아버리고 자신은 왜장의 총에 당한다. 순신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병사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전투는 승리로 끝난다.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줄을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줄은 없어지고 기차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을 도와준다. 뤼미에르형제의 세계최초의 영화이자 상영시간 1분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