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Lovers Refuge, 2002)

서른두살의 남자, 재섭은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지난 시간들과 단절하려 하고 현재의 시간과 화해를 시도하지도 못한다. 여전히 게으르게나마 소설 습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몸에 밴 습성, 관성의 법칙 같은 거다. 그렇게 지향없이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대학동기면서 사랑했던 혜경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술 마시고 찾아간 창녀에게 혜경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의 충고대로 동기모임에 나간다. 그러나 자신과 달리 지난 시간들 속에서 잘 빠져나와 사회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기들을 보고, 그러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소희라는 여학생이 학원에 새로 등록을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녀에게서는 어딘가 아픈 구석이 엿보인다. 재섭은 점점 당찬 소희에게 호감을 느껴간다. 학원을 쉬는 날,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소희를 만나고 소희와 어떤 중년 남자와의 심각한 분위기를 목격한다.

“사실 사는 이유는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요”
열일곱살 소녀, 여고 1년생인 소희는 세상이 우습다. 사람들이 우습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서 따뜻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냉소를 던질 뿐이다.공부도 잘하고 집안이 특별히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을 한다.

지난 학원에서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게 싫은 소희는 새로 학원을 옮긴다. 그녀는 재섭에게 호감을 갖는다. 학원에 나가지 않는 날 원조교제를 하는 중년 남자와 영화를 본다. 싫다는 데도 계속 귀찮게 하는 중년 남자한테 짜증이 난다. 전철역 플랫폼에서 재섭을 우연히 만난다.
소희의 집 근처까지 따라온 중년 남자는 재섭의 존재를 묻고, 재섭을 함부로 말하자 소희는 화를 내고 가 버린다.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줄을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줄은 없어지고 기차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을 도와준다. 뤼미에르형제의 세계최초의 영화이자 상영시간 1분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