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야 간다(A Wacky Switch, 2004)

비록 A4용지 살 돈도 없지만 그래도 저는 순수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문단 첫 장편데뷔작인 <카프카를 만났다>는 냄비받침이 되어 국민의 식습관개선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지만, 책을 출간해준 대석이네 출판사는 쫄딱 망했고 저는 나날이 헐크처럼 변해가는 마누라가 무서워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는 마누라 손에 이끌려 택시운전사로 나섰다가 사람을 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대석이가 말한 회장님 대필작가 일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서전의 주인공인 회장님이 우리 나라 최대조직 만철이파의 두목이지 뭡니다. 너무 놀라 오줌 쌀 뻔했습니다. 어쩐지 지가 무슨 국회의원도 아니고 웬 현금을 그리 많이 주나 했습니다. 이제 빼도 밖도 못합니다. 회장실도 작업실로 내주고 차도 빌려주고 꼬붕도 붙여줬습니다. 그래도 싫습니다. 일 잘못하면 저 세상으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아~ 어쩌면 좋습니까?

죽으란 법은 없나 봅니다. 대학 때 대자보 쓰던 실력으로 헌법이랑 영장주의 운운했더니 짭새들 꼬랑지 내리고 가버렸습니다. 의도적은 아니었지만 회장님의 목숨도 살렸습니다. 이제 저는 회장님하고 아주 아주 각별한 사이라는 거 아닙니까. 쥐구멍에 볕이 나고 무지개가 떴습니다. 문학에 매진하던 제가 조직에 몸담고 보니 조직의 취약점도 보이고 건달문화의 개선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들 교육도 좀 필요할 것 같고… 근데 회장님께서 요즘 여자한테 빠져 바쁩니다. 허허, 진정한 보스는 이래선 안되는 건데…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줄을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줄은 없어지고 기차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을 도와준다. 뤼미에르형제의 세계최초의 영화이자 상영시간 1분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화다.